2016년 3월 18일 금요일

[계간홀로] 섹스하지 않을 자유

+'계간홀로' 8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언젠가는 계간홀로에서 나를 찾아주실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만약 원고를 써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무슨 이야기를 쓸까? 김칫국부터 한 사발 들이키고 이런 저런 주제를 생각해 본적도 있었다.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원고 요청이 들어왔는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헤매고 있다.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할까.
성관계. 그러니까 섹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홀로’와 거리가 멀다. ‘남녀가 성기를 통하여 육체적 관계를 맺음’ 이게 바로 섹스의 사전적 의미다. 뭐 언제부터 우리가 사전적 의미에 충실한 삶을 살았나 싶지만 읽다보니 짜증이 좀 난다. 홀로 하는 섹스는 그럼 섹스가 아니란 말인가. 그리하여 처음에는 홀로 하는 섹스에 대해서 글을 써볼까 했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자위를 할 수 있을 지 여러 가지 섹스 판타지(라고 쓰고 ‘딸감’이라고 읽는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섹스토이에 대해서도 한번 훑어보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런 글은 이미 여러 번 썼더라. 같은 주제의 글을 한 번 더 쓴다고 안 될 건 없지만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긴 싫으니까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난 열세 살 이후로 거의 쉬지 않고 연애를 해왔다. 연애를 아주 잠깐 쉴 때도 있었지만 그때도 썸은 타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몇 년 전부터 타지 유학생활을 시작했는데 덕분에 애인과 자동으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다. 장거리 연애를 해본 적도 없었고 연애를 쉬어본 적도 없는 지라 걱정을 했었다. 너무 섹스가 하고 싶으면 어쩌지. 다른 사람이랑 하겠다고 양해라도 구해야하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땅의 기운 탓인지 한국을 떠나자 성욕이 그 전의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내 보지는 홀로 ‘버진 어게인’의 길을 걷고 있다. 자위도 안하냐고? 자위는 하고 있다. 하지만 혼자 할 때는 주로 바이브레이터로 클리토리스 자극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 딜도를 사용하지는 않는 지라 나의 보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한 때는 가운데에 다리가 하나 더 달린 것 같은 남자와도 섹스를 했었는데 지금 나의 보지는 좁아지다 못해 구멍이 아예 사라질 지경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멋대로 생각한다. 섹스 칼럼니스트는 섹스를 많이 해봤을 거고 섹스를 많이 하고 있을 테니 섹스 중독일 것이다. 나는 그리하여 ‘섹스 중독’인 여자가 되었다. 한 잡지사 기자는 두 시간 인터뷰 내내 섹스에 대해서 물어 보기에 열심히 대답했더니, 그 정도면 섹스 중독 아니냐고 묻더라. 섹스 중독이면 내가 지금 섹스하고 있지 여기 앉아서 인터뷰를 하고 있겠니? 내가 섹스 중독이면 치료비라도 대주게? 그냥 이름 붙이고 싶은 거잖아.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난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여자니까 장거리 연애로 시작된 ‘버진 어게인’ 라이프에 대해 들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얼마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지방 단체가 성경험 없는 여성들에게만 주는 장학금 제도를 도입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순결검사’도 할 계획이란다. 먼 나라의 일이니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만 절대 먼 나라 일이 아니다. 처녀 아닌 여자를 참을 수 없다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던 한 개그맨은 여전히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다. 저런 발언을 하고도 돈 벌어먹고 사는 게 가능한걸 보니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여성의 ‘순결’이 중요한 덕목인 모양이다.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순결이 아닌 이상 ‘순결’은 결혼 전까지 섹스하지 않는 것 즉 ‘혼전순결’을 뜻한다. 순결 서약도 마찬가지다. 결혼 전까지 섹스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는 것이지 평생 섹스하지 않을 거라고 서약하는 건 아니다. 그 누구도 여성들이 평생 섹스하지 않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미래의 배우자를 위해서 일시적으로 섹스를 하지 않으면서 ‘순결’을 지키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아마 ‘처녀 아닌 여자를 참을 수 없다’던 개그맨도 자신과 만날 여자가 평생 ‘처녀’이기를 바라는 건 아닐 것이다. 자신과 섹스하기 전까지만, 딱 그 때까지만 처녀이기를 바라는 거겠지.

‘순결’이란 단어는 절대 여성들이 섹스하지 않을 자유를 지지하고 있지 않다. 당장 결혼 적령기만 지나 봐도 알 수 있다. 결혼적령기가 지났는데도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남자와 섹스하지 않는 여성들은 ‘비싸게’ 군다거나 ‘이기적’이라고 욕먹는다. 결혼을 하고도 섹스하지 않는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남편을 위해 입으로라도 빨아줘야 하는 것이 여자들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안 그랬다간 남자들의 욕망을 이해 못하는 ‘이기적’인 여자가 된다.
‘순결’이라는 단어에도 ‘섹스 중독’이라는 단어에도 여자들의 욕망은 빠져있다. 여자들의 섹스는 절대 일관적이지 않다. 어떻게 바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늘은 할 생각이 없지만 내일은 하고 싶을 수도 있다. 섹스를 할 자유와 섹스를 하지 않을 자유가 한 세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홀로’ 사는 여자들이라고, 연애를 하지 않는 여자들이라고 다 같은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원나잇을 즐기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한방에 훅 갈만한 포르노를 모으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새로운 섹스토이를 고르고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정말 섹스에 관심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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