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지글스] 여자들만의 섹스토크

+독립잡지 '지글스' 2015 겨울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여자들만의 섹스토크 


“섹스토크에서 뭐해요?”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참 난감하다. 뭘 하긴 하는데 뭘 한다고 딱 꼬집어서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애매하다고나 할까. 섹스토크를 처음 시작한 건 2012년이었다. 난 그때 작은 섹스숍에서 일요일마다 <은하선의 일요일>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전용 섹스숍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섹스토이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성들이나 섹스숍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여성들이 정말 많았다. 인터넷 상에는 ‘아내가 뿅 가요.’ ‘여자 친구가 정말 좋대요.’와 같은 남성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섹스토이 후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섹스토이에 관심은 있지만 섹스숍 문을 열기가 쉽지 않았던 여자들이 일요일마다 하나둘씩 놀러왔다. 어떤 섹스토이가 좋을지 나에게 부담 없이 묻고 구매를 하는 여자들을 보고 있으면 뿌듯했다. 섹스숍에 여자들이 드나드는 게 신기했는지 남자들이 창문으로 슬쩍 보고 가곤 했다. 그리고 난 그 공간에서 여자들끼리 모여 섹스토크를 하는 자리를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섹스토크는 매번 다르게 진행한다. 그 자리에 오는 이들이 원하는 방향과 방식에 따라서 다르게 진행하기도 하고 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뭘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 애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번 너무 다르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까진 나도 모른다. 성소수자 여성들과 함께 하기도 하고 십대 여성들과 함께 하기도 했으며 섹스토크 소모임 회원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여성들은 섹스에 대해 이야기할 공간과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섹스 이야기를 할 친구들이 주변에 있는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섹스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들이 없는 경우는 극도의 목마름에 시달린다. 동네 호프집만 가도 남자들은 모여서 자기가 ‘따먹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여자들은 섹스라는 단어 꺼내기도 쉽지가 않다. 어릴 때부터 순결 조기교육을 받은 후유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섹스를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걸레’가 되어버리곤 하는 세상인지라 영 믿고 떠들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섹스토크를 한다는 공지를 올리기가 무섭게 내 메일함은 참가 신청하는 이들의 각종 사연으로 가득 찬다. 참가 신청을 한다고 해서 모두 섹스토크에 참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섹스토크 특성상 참가 인원이 많아지면 각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없으므로 되도록 열 명 이하의 여성들과 소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사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들과 진행해본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여덟 명에서 열 명 정도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았다.

섹스토크에서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고백하자면 섹스토크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저 말 그대로 모여서 섹스토크를 하는 자리이다. 어떤 특별한 섹스에 관한 비법이나 비결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섹스토크를 신청했다는 분들께는 가끔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모여서 떼 자위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살짝 실망했다는 분도 있었다. 판을 까는 것과 섹스 이야기의 시작을 여는 것 그리고 중간 중간 뻑뻑하지 않도록 윤활제를 바르는 것 외에 내가 하는 일은 없다.

섹스토크에 오려고 마음을 먹은 분들은 대부분 다른 여자들의 섹스 이야기를 듣고 싶거나 자신의 섹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분들이다. 섹스토크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내가 모아놓은 섹스토이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모두가 입을 열어 섹스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섹스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밥을 먹고 술도 한잔씩 마시면 굳이 억지로 흘러가게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매끄럽게 흘러간다. 주제를 굳이 정해놓고 시작하지 않아도 섹스토이에 대한 각종 지식이나 자신만의 자위 방법과 같은 이야기들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여러 번 섹스토크를 하다 보니 기억에 남을 만큼 특별한 일들도 있었다. 얼마 전 십대 여성들과 ‘섹스토이 파티’라는 이름으로 섹스토크를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십대 여성들과 함께 하는 자리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십대들이 서로 섹스에 대해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섹스토크에 참가한 십대들은 살짝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기대감에 가득 찬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걱정과 기대를 가지고 이제 슬슬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 이게 무슨 일, 경찰이 들이닥쳤다. 민원이 들어왔단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십대들이 섹스라니 세상이 거꾸로 돌 것만 같아 걱정이 됐나보다. 대체 어떤 선량한 시민들이 자라나는 새싹들이 혹여나 나쁜 길에 빠져 들까봐 이리도 부지런하게 민원을 넣으셨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그 날 십대 여성을 위한 섹스토크를 축하해주러 세 군데의 경찰서에서 총 일곱 명의 경찰들이 왔다. 그 중에 단 한 명도 여성 경찰은 없었다. 전부 생물학적 남성 경찰들이었다. 현장을 잡기 위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경찰들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봤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섹스토크를 할 신성한 장소에 남성들이 한 명도 아니고 일곱 명이나 떼로 들이닥치니 설명할 수 없이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그들이 물었다. “남자는 없어요?” 난교파티를 상상하고 왔는데 남자가 없으니 이상했나보다. 여자끼리도 할 수 있지만 여자끼리의 섹스는 그들 상상 밖의 영역일 테니까. 조금 놀랐을 법도 한데 참가자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화롭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놀란 건 사실 나였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놀란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잠깐 밖으로 나가 섹스토크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자 경찰들은 알겠다며 전부 돌아갔다. 경찰이 돌아간 뒤 시작한 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사실 경찰이 들이닥칠 거란 구체적인 상상까진 하지 못했지만 십대 여성들과의 섹스토크를 기획하면서 어느 정도 법적인 부분을 염려하긴 했었다. 그럼에도 굳이 십대들과 섹스토크를 하고 싶었던 건 나의 십대 시절과 화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말할 수 없었던 나의 십대 시절의 외로운 섹스를 글을 통해 겨우 끄집어냈다면 섹스를 하고 있거나 섹스에 관심이 많은 십대들에게 섹스토크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은 본격적인 화해의 과정이었다. 오랄 섹스가 궁금해서 손에 침을 묻혀 보지를 만지고 딜도 대신 오이를 넣곤 했던, 섹스를 유난히도 좋아했던 나의 십대 시절. 내가 경험했던 십대의 섹스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다른 섹스 하는 십대들의 목소리들도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섹스토크의 판을 깔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섹스 이야기를 마음껏 하지 못해 그동안 답답했을 십대 여성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귀여운 오뚝이 모양 섹스토이도 협찬 받아놓았다. 그러나 법적 미성년자에게 교육적인 목적으로 섹스토이를 보여주는 일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섹스토이를 나눠주거나 판매하면 청소년 성보호법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듣고 난 후 바이브레이터를 나눠주려던 애초의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왜 이 작고 귀여운 바이브레이터를 나눠주는 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든 책임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걸 혼자서 감당할 만큼의 여력은 없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그 부분은 접었다.

성교육 시간에게 십대들에게 콘돔 씌우는 방법만 가르쳐도 섹스를 하라고 가르치는 거냐며 난리치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십대들의 섹스토이 권리 같은 건 어쩌면 너무 앞서나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섹스를 하고 있는 십대 여성들이 존재한다. 혼자서 자위를 하건 누군가와 섹스를 하건 십대 여성들은 섹스를 하고 있다. 그리고 바이브레이터가 궁금해서 안마기 혹은 진동칫솔을 보지에 갖다 대는 십대 여성들이 분명히 있다.


십대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도 제대로 하지 않은 단계다. 특히 십대 여성들은 십대 남성들에 비해서 더 많이 섹스에 대한 욕망을 거세당하곤 한다. 몽정을 하고 자위를 하는 십대 남성들은 진짜 남자가 됐다며 축하받지만 생리를 시작한 십대 여성들은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가끔 축하를 받기도 하지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 된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십대 여성들에게 섹스토크의 자리란 더욱 중요하다. 반갑게도 그 자리에 모였던 십대들 중 몇몇은 그 뒤로 서로 연락하며 지낸다고 한다.

이제까지 섹스토크를 함께 한 여성들의 스펙은 천차만별이다. 기혼 여성도 있었고 미혼 여성도 있었으며 양성애자도 있었고 이성애자도 있었다. 다자와의 비독점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이들도 있었고 일대일의 독점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이들도 있었다. 십대도 있었지만 오십대도 있었다. 섹스토크에 참여했던 오십대 여성 중 한 분의 이야기는 내 책 《이기적 섹스》에 진하게 담겨 있다.

그녀의 전 남편은 그녀의 첫 섹스 상대이자 첫 연애 상대였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섹스를 하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되는 줄 알았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섹스를 하려고 했던 남편에 비해 그녀는 섹스 행위 자체가 괴로웠다. 울면서 너무 아프다고 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결혼 생활 내내 섹스가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그녀는 이혼 후에 비로소 섹스의 의미를 발견했다.


섹스가 고통이었던 그녀와는 달리 그녀의 부모님은 동네에서 소문난 잉꼬부부였단다. 엄마는 어디서든 섹스를 할 수 있도록 돗자리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셨고, 단칸방에 살던 시절에는 부모님이 섹스 하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한다. 그녀의 엄마는 분명 섹스를 좋아하셨다. 섹스가 괴로웠던 결혼 생활 중에 섹스를 즐기는 비결에 대해 알고 싶어서 엄마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며 딱 잡아떼셨다고 한다. 그렇게 섹스를 좋아했던 엄마는 지금 그녀의 나이에 남편의 죽음을 겪었다. 그 뒤로 그녀가 알기론 엄마는 혼자였는데 그 욕구를 어떻게 참고 사셨는지 궁금하단다. 엄마의 섹스에 대해 듣고 싶지만 매번 그런 적이 없다고만 하셔서 아직까지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단다.


그녀의 이런 이야기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공감할 만하다. ‘같은’ 여자라고 하지만 세대가 다른 여성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공유하기란 더 어렵다. 엄마와 딸 사이가 아니더라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책에 담긴 그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의미가 있지만 세대 간의 연결고리와 같은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섹스에 대해 몸의 욕망에 대해 찬찬히 알아가고 있는 그녀는 분명 멈춰있지 않다. 십대에서부터 이십대 후반에 이르기까지의 내 섹스 경험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여성 네 명의 섹스 인터뷰로 채워진 나의 책 안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유독 빛나는 이유다. 섹스의 즐거움을 경험한 후 ‘내 안에 좋은 부분이 보석처럼 많이 박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그녀는 반짝이는 보석 그 자체다.

요즘 들어 내 책을 읽은 오십대 혹은 사십대 여성들에게서 응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책을 읽은 십대 여성들에게도 응원을 받고 있다. 각기 다른 시간을 살아온 다른 세대의 여성들이 서로의 섹스를 공유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어쩌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댓글 1개:

  1. 와 정말 대박입니다. 저도 어머니와 섹스 얘기는 절대로 못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얼마나 좌절감이 들었는지, 그리고 왜??? 라는 질문에서 헤어나지 못햇을 때. 정말 그문제가 아직도 저를 오랫도안 괴롭혀왔습니다. 엄마와의 관계가 나이가 들수록 멀어지면서. 그리고 섹스에 대해 생각할수록. 엄마도 여자였다는 생각을 할수록 말이죠. 마지막 문장 '어쩌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말에 감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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